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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대박나다.
시원스레 망하고 나니 갑자기 시간이 남아 돌았다.
너무나 무료했던 그는 당시 하나 둘씩 시도하던 홈페이지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된다.
원래 컴퓨터를 다루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사업 실패로 받은 충격을 잊기 위해서라도 열중할 것이 필요했다.
드림위버라는 홈페이지 제작 툴을 익혀 새 페이지짜리 홈페이지를 완성해내자
가슴 가득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검색엔진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등록했다.
조악한 홈페이지였지만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작은 홈페이지가 대형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당시에는 댄스에 대한 홈페이지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뜨거웠다.
김영우의 홈페이지는 엄청난 히트 수를 기록하며
매일 전날의 기록을 갈아 치웠고, 곧 유명 사이트로 손꼽히게 되었다.
홈페이지의 번창에 힘입어 그는 일대일 교습을 다시 시작했다.
춤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순서가 밀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기번호까지 발령해야 했다.
김영우의 몸은 하나인데 배우고 싶은 사람은 많았다.
자신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다시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99년에 망했을 때, 그 학원 한 달 임대료가 삼백만원이었요.
이걸 십 분의 일로 줄였죠.
동네 아파트 상가들 보면 싼 데 많아요.
집 근처에서 실 평수 사십 평에 월세 삼십만 원 자리를 구했어요.
오디션을 통해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강사로 뽑았다.
실패를 통해 다시는 아는 사람과 일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강사 4명과 김영우, 다섯명이서 서울의 변두리에서 조심스럽게 사업을 재개했다.
단 일 년 사이에 그는 성숙해져 있었다.
이전에는 남의 춤을 따라하는 데 급급했던 그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고 체계화시킨 것도 이때였다.
강사가 늘어났어도 대기번호는 계속 발령해야 했다. 회원은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웹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홈페이지를 새로 만든 것이다.
새로운 홈페이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댄스동영상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세 쪽자리 홈페이지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찾아 왔다.
나이트에 가면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지명도가 높아졌다. 착실히 회원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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